[인물탐구-1] 자크-이브 쿠스토

“스쿠버 다이빙의 아버지”

[ Jacques-Yves Cousteau 1910-1997 ]

자크-이브 쿠스토(Jacques-Yves Cousteau)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자크-이브 쿠스는 스쿠버 다이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로, 수중 탐험의 세계를 혁신적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오늘은 이 놀라운 인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초기의 모험과 성공

Jacques-Yves Cousteau(1910년~1997년)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에 대한 놀라운 호기심을 지닌 프랑스의 탐험가입니다. 누벨아키텐 레지옹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의 어린 시절과 프랑스 복귀 후의 교육에서 미숙한 프랑스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갔습니다.

2. 바닷속 세계의 탐험

쿠스토는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세계일주 항해를 포함한 다양한 항해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의 탐험 정신은 해저 탐험으로 이어졌고, 그는 최초의 스쿠버다이빙 장비인 아쿠아렁(Aqua lung)을 개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3. ‘침묵의 세계’와 수상 경력

1953년, 쿠스토는 해저촬영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의 세계’를 제작하여 제9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1957년 제2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4. 해양 연구소와 기술 개발

1950년대에는 쿠스토는 칼립소 호를 구입하여 해양 탐사에 나서며 다양한 잠수 장비를 시험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해양 연구소를 통해 ‘딥스타 4000’과 같은 해저 탐사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5. 환경 보호와 해저 주택 실험

1960년대에는 환경 보호에도 힘쓰며 프랑스 정부의 핵폐기물 계획에 반발하고, 해저 주택 실험을 통해 수심 120m에서의 생활을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쿠스토는 환경 보호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6. 어려움에 부딪힌 미국에서의 활동

196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서도 활동하게 되었는데, ABC에서 방영된 ‘쿠스토의 모험 세계’와 쿠스토 해양 박물관 건립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사망과 박물관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7. 지속되는 영향과 업적

Jacques-Yves Cousteau는 프랑스 해군 장교 출신으로서, 해양 탐험가, 다큐멘터리 감독, 환경보호 운동가, 발명가, 해양 환경 운동가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스쿠버다이빙의 아버지로 기억되며, 그의 영감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8. 현재와 미래에도 이어지는 영향

Cousteau는 스쿠버다이빙의 아버지로서만이 아니라 해양 환경 보호 운동가, 발명가로서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재에도 그의 노고와 업적은 살아 숨쉬는 자연과 바다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큰 영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이러한 영향은 미래 세대에게도 계속해서 전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9. 마지막 세계로의 탐험

1996년 1월 8일, 싱가포르에 정박한 칼립소 호가 침몰했습니다. 이에 쿠스토는 칼립소 2호를 만들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지만, 칼립소 호의 침몰은 쿠스토가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징조였습니다. 그는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1997년 6월 25일, 파리에서 향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삶은 바다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탐험으로 가득 찼으며, 쿠스토는 스쿠버다이빙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환경 보호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마치며..

스쿠버다이빙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할 Cousteau라는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 자료를 찾으면서 웃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쿠스토는 1950년에 The Silent World라는 스쿠버다이빙책을 출간했는데, 그 내용에는 실험 정신이라고는 볼 수 없는 엉뚱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자신의 다이빙 이야기를 기술했습니다.

일산화탄소에 오염된 공기로 다이빙하다 수중에서 기절하기(일부러 굳이?), 무감압 한계 수심이나 시간 따위는 무시하고 바닥까지 찍어보기(아니 왜?), 버디 없이 혼자 다이빙하다가 죽기 직전까지 가보기, 슈트 따위는 필요 없다며 맨몸으로 지중해와 다른 곳에서 다이빙해 보기 등등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일부러 다 해보고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너무나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글을 작성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웅장하고 멋있던 탐사선 칼립소가 침몰했다는 뉴스 기사를 봤을 때에는 제 가슴이 다 무너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대통령 후보로 추천 되었지만 스스로 거절 할만큼 자신의 일을 진정 사랑했던 가슴에 바다를 품은 진짜 다이버였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의 처음에 나온 빨간모자의 웃는 모습의 쿠스토는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우리에게 스쿠버다이빙을 선물해주고 생을 마감 하셨고 임종 후 장례식장 관속에서도 그 빨간 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저 쿠스토라는 인물에 대해 아쿠아렁 브랜드를 만든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는 당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한 몸에 받았으며 달에 는 암 스트롱이, 바다에는 쿠스토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명품 시계브랜드 IWC에서 쿠스토를 기념하는 한정판 시계를 제작 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시계에 방수 표시를 미터(m)로 표시 하는데, 이 기념 시계에는 바(bar)로 표시가 되어 있는 부분에서 또 한번 그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30bar로 표기된 이 시계는 수심 몇 미터까지 방수가 될까요?

정답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댓글 남기기